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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i Lee Solo Exhibition

    M Gallery, CICA Museum
    April 26 – 30, 2023
    2023.04.26 – 30

    도심 속의 유목민

    《도심 속 유목민》,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서영희(홍익대학교 대학원 교수, 미술평론가)

    형형색색의 작은 오각형 조각들을 조합하여 평면 형상들을 만든 화가 이정연(‘유니’)의 작품들이 이번 4월 김포시 CICA미술관에서 소개되고 있다. CICA 공모로 선정된 《도심 속 유목민》전은 그의 최신작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 아니라 우리 관객에게 현대미술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드문 기회일 수도 있겠다.
    흡사 레고 디자이너처럼 작가는 창의력 넘치는 아이디어로 장난감 같은 원색 브릭들을 한데 모아 캔버스에 경쾌한 팝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화면 중앙의 아이콘들은 장난스런 모습의 마리오네트가 되어 욕망의 놀이에 열중한 듯하다. 이들 주인공들은 너무도 인상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명명할 수 있는 현실의 대상들이 아니다. 상상과 꿈속에서 떠오를 법한 유쾌한 가상 이미지로, 퍼즐게임인양 절묘하게 짜 맞추어진 상태에서 활인화된 몸, 얼굴, 동작 등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비교하자면, 감각의 주관성, 상대성을 근거로 한 최근 art & design technology 분야의 게임그래픽(CG) 편집 이미지와 유사하게 체감되는 형상들이다.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해진 현재의 MZ세대에게 이 같은 형상들은 어떻게 수용될까? 확실한 점은 그들이 견고하고 묵직하게 고정된 부동성의 기성 재현회화보다 이들 가볍고 가변적인 형상에 더 친근감을 느끼고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나하는 사실이다. 심지어 유니작가의 채색법도 이에 상응한다. 놀이나 게임 브릭들의 기본색들인 적, 청, 녹, 황 원색 조각들의 경쾌한 조합은 그래픽영상을 즐기는 유저들에겐 화면 최소 단위인 픽셀의 덩어리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지나간 전통 회화를 벗어나 유동성으로 의식의 흐름을 암시하는 새로운 회화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에 이 같은 유니 스타일의 그림들이 놓여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디지털 픽셀들로 대체될 수 있을 매우 작은 오각형 유닛들, 이들이 집적되어 제법 규모 있는 회화적 아이콘으로 확장된 중대형 작품의 이중 구조를 유념해보자. 작가는 경쾌함이란 감각 뒤로 숨겨 놓은 예민한 지각능력 덕분에, 회화 바탕(ground)에 무수한 선들의 네트워크를 깔아놓았다. 가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선들–도시를 가로세로로 엮는 길들을 은유–은 화면의 아이콘(figure)을 마냥 납작하게 혹은 가볍게 느끼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엠보싱기법으로 돋우어진 선들은 겔 매체의 물성 때문에 표면에 돋을새김 무늬를 가공해놓은 것처럼 보이게 할 뿐 아니라 그 복잡한 연결망 때문에 컴퓨터 내장 CPU와 메모리 사이의 연결선들을 연상하게도 한다. 그림의 바탕 선들과 그 위로 떠오른 밝은 빛의 아이콘 형상은 온갖 프로그램과 입출력시스템이 순간으로 연동하는 전자회로와 그 위로 떠오른 전기에너지의 반짝이는 스크린이미지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유추를 조금 더해보자면, 이들은 혹여 최근 회자되는 사회의 행위자-연결망(actor-network) 구조 현실을 추상적으로 비유하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작가의 그림이 전자기기와 연결돼 있진 않지만, 밝은 일렉트로닉 컬러-순수 원색들-로 현현한 아이콘 형상은 확실히 수백 년이 이미 지난 고정된 부동의 기성 회화와는 차별성이 있다. 이 은근한 성격 차이는 흥미롭기 그지없어서, 필자에겐 과거 타블로 비방(살아있는 그림)이 준 기이한 느낌에 버금가는 생생한 시각효과를 확보해준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번 초대전에 즈음해, 유니 작가가 시현한 조형 형식들이 작품의 의미화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보면서도, 작가가 제시한 제목 즉 “도심 속 유목민”에 짐짓 머뭇거리는 비평의식을 외면할 수 없음을 실토한다. 사실 의외였던 제목이 가리키는 작품의 중심 테마는 요즘 트랜드화된 노마디즘이다. 그런데 초원이 아닌 도심 속을 유랑하는 유목민이라니 … 작가의 단어 연출 뒤에 어떤 뜻이 숨어있을지 궁금해지는 건 관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면 속 아이콘들은 무작위하게 영국의 뉴캐슬이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 같은 세계 도시들을 떠도는 주인공이자 작가의 가상적 실체이다. 그렇다면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논의하는 편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고 깨닫는다.
    작가의 주인공들인 아이콘B(building), 아이콘units, 아이콘F(face) 등은 작은 유닛의 집적(덩어리) 상태로 여기저기 도시들을 떠돌아다닌다. 한국의 대다수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듯이, 이들 주인공도 도시 속 이야기들이 더 많다는 점에 착안해 인적 드문 장소가 아닌 도심 가운데를 배회하며 각자의 내러티브를 만들어 보인다. 청녹색조 해안가 위 하늘의 구름처럼 떠돌기도 하고, 벨기에의 브뤼셀 중앙광장에 털썩 주저앉아 더위를 식히며 휴식의 순간을 향유하기도 한다. 국경 제한 없이 각 아이콘들은 열대 도시와 알래스카의 땅끝 마을을 스쳐지나가며, 걷거나 앉거나 뛰어다니면서 끊임없이 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이 같은 방랑의 무한한 접속과 연결을 상상하는 놀이로 작가는 노마딕한 자유와 놀이의 쾌감을 꿈꾸고 있다.
    사회학자 M. 마페졸리는 노마디즘에 관해 사회를 절대가 아닌 상대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삶의 태도라고 극찬한다. 과거 정착생활의 안정된 고정감보다 한계를 넘나드는 비정착성의 노마드는 국가, 민족, 종교의 폐쇄적 틀을 넘어서 사회의 온갖 프레임들을 유연하게 마주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이질적 환경과 낯선 타자들에 대한 열린 수용과 비위계적 수평 좌표 안에서 함께 있음의 가치를 각성시키는 노마디즘 미학은 21세기 현재 우리 관점을 포용적 관대함으로 재정립시키는 접속과 연결의 낙관적 힘이라 할 수 있겠다. N. 부리오가 역설한 교류와 소통의 “관계미학”의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G. 들뢰즈가 설명한 반복 속의 차이 값을 인정하는 일 혹은 리좀의 경계를 넘는 수평(민주)적 확장과 공감능력의 요구도 유사한 메시지를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유니작가의 회화 연작은 그런 점에서 의미론적으로 곱씹어볼 가치가 있는 시의적절한 내용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교훈적이거나 사회학적인 그림들이라 추켜세울 의도는 없다. 하지만 동시대 사회의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 감정적으로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표상해냈다는 면에서 정당히 평가받을 필요가 있겠다.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는 경직된 사고, 소외와 우울한 무기력을 지탱하기보다, 이것들을 뒤로 하고 틀을 깬 방랑의 놀이를 시작한다면—이것이 상상 속 놀이일지라도–, 기능 중심의 비인간적 관점에서 탈피한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과 유쾌한 판타지의 삶의 새 지평이 엿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더하여 주목하건대 화면의 색조는 플라스틱 장난감의 생생한 원색들로 채색되고 형상들은 나이브함과 유머러스함으로 충일한 모습이다. 이러한 회화적 분위기는 어느덧 우리가 망각한 어린 시절의 꿈꾸며 상상하던 저 흥겨운 놀이의 현장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연히 축제에 참가한 관객이 되어, 유희적 본능에 휘감긴 채 일탈의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는 노마드, 그래서 합리적 계산에 얽매인 현실원칙의 구속에서 벗어나 일순간 쾌락원칙에 풍덩 빠져보는 노마드가 됨직도 하다. 이런 본질적 유쾌함이야말로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더 없는 가치가 아닐까? 유니작가의 《도심 속 유목민》 전시장에서라면, 무위로운 휴식과 즐거움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도 필요 없다. J,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가 암시하는 향연에 초대받은 자의적 유목민이 되어 백일몽을 한 번이라도 꿈꿔 볼만 하다. 그래야 자폐적이고 경직된 존재자로 추락하지 않을 것이고, 타자들과의 접목을 통해 ‘더불어 문화적 문명의 동력을 되찾을’ 가능성이 커질 것이리라. 다양한 삶과 생각에로 회귀할 적응력도 그리고 타자들과의 교류로 정서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힘도 노마드의 놀이를 통해 거듭 되찾을 수 있고, 떠남과 출발 그리고 회귀의 삶의 순환구조도 반복되는 놀이로 충분히 순치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 상명대학교 조형예술과 재학 중 입시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차츰 안정이 되어가는 시점에 미술선생으로서의 인생이 아닌 잠시 접어둔 꿈의 한 부분을 열 고픈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술 수업 중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힘들어서 지쳐있는 아이들에 기를 불어넣어주기 위해 “꿈을 향해 달려가야지! “라는 말을 자주 해주면서 난 지금 내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나? 라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본인 꿈에 다가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선생으로서, 늦깎이 학생으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 것을 예상했지만 2018년 3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하였고, 2년 반의 기간 동안 회화작업과 일을 병행하며 본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2020년 8월 졸업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무엇인가 나만의 캐릭터를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삶 주변 환경에서 보여 지고 느껴지는 것들에서 찾으려고 대학원 진학 후 많은 실험 작들을 그려가며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유닛들이 집적된 하나의 집단. 즉, Mass를 테마로 표현하며 “The mass of units” 라는 주제로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전 사실적 표현에서 출발한 그림은 첫 학기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보편적인 작품보다는 많은 상상을 하게하는 작품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이콘B”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