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나비 개인전
CICA Museum, 3-A Gallery
January 10 – 14, 2024
2024.01.10 – 14
A journey to the city
전시 전반을 아우르는 소개는 ‘직선과 곡선의 조형요소들을 캔버스 화면에 자유롭게 배치하여 기하학적인 공간을 구성한 작업’이다. 작업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도시에서 출발하여, 곡선과 직선, 공간과 시간, 인공과 자연 등의 키워드로 발전했다. 도시에서 발견되는 인공물과 자연물, 각 개체들 간의 관계, 그리고 어떤 질서, 시공간의 흐름 등은 언제나 나에게 지적이고 창의적인 자극을 일으킨다. 나에게는 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크고 작은 건축물들의 곧게 뻗은 직선적인 요소들이 흥미롭게 다가와서 초반에는 그런 직선적인 조형 요소들에 집중하여 도시의 모습을 그렸고 그 이후 지금의 그림들로 발전하였다. 나의 그림 안에는 항상 견고한 직선들이 화면 곳곳을 차지하고, 직선뿐 아니라 직선으로 이루어진 사각의 면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와 함께 곡선적인 면들도 함께 등장하는데 곡선적인 요소들이 딱딱한 직선 사이를 지나면서, 각각의 자리에 위치한 면들과의 관계와 공간적인 흐름을 제공하고, 화면 전체를 풍성하게 만들도록 한다.
기하학 도형을 이용한 화면 구성을 하다가, 어떤 유동적인 형태들이 이 직선의 요소들과 유기적인 관계로 잘 어우러지도록 하고 싶어서 몇 차례의 기법 연구 끝에 물감을 마블링 하여 곡선적 요소를 추가하였다. 이후에는 초기의 작업보다 조금 더 추상화 되고, 나의 손에 의한 의도와 통제를 벗어나 물감에 의해 우연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향한 나의 애정과 직관적인 감각을 캔버스 위에 예술의 일환으로 나타낸 작업들을 모아 ‘도시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하나의 전시로 보여주게 되었다.
다만 시각 예술과 기하학의 일종으로서의 단순한 조형 요소나 조형 원리들을 나타낸 것만은 아니다. 전시를 보는 그 공간과 시간, 그리고 그 순간의 각자의 상태와 또 각각의 작업을 보며 떠오르는 도시의 이미지 또는 그 외의 전혀 다른 어떤 장면들에 집중하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던 도시 속의 시간과 공간을 잠깐이나마 특별한 여정으로 바꾸어 그 속에 숨은 사소한 이벤트와 재미들을 함께 즐기기를 바란다.
평소에 도시를 좋아하며 도시 공간을 구성하는 직선적인 건물과 인공물 등의 형태적 요소에서 마음적인 끌림을 느껴 사진으로 많이 찍어 둔다. 또 드로잉을 할 때에도 도시의 외형적인 조형 요소에서 비롯한 그림들을 그린다. 도시 공간에서 조화되는 직선적인 요소들과 곡선적인 특징의 요소들이 언제나 나의 시각을 자극하여 내가 보는 도시 곳곳의 모습들을 다채롭게 했다. 내가, 사람들이, 삶을 존속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바로 이 곳, 도시에는 나의 작업의 원천이 가득하다. 나는 그것들을 언제나 그리고 싶었고, 나의 상상 속 무궁무진한 공간의 모습들을 그려야 했다. 내가 살아가는 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나는 언제나 나만의 미적 감각을 무궁무진하게 끌어올 수 있기에, 도시 속에서 예술을 알아가고 작업을 하는 것을 질리지 않고 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나에게는 직선과 그것들로 이루어진 면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가 흥분하며 마음이 들뜨는 시각요소는 올곧고 반듯하게 평면 위에 놓여진 직선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화면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복잡한 형상을 만들기도 하고, 플랫하고 단색인 면으로 화면을 채우기도 한다. 여태 찍은 도시 어느 곳의 사진을 보며 시각적 자극을 받기도 했지만, 작업으로 표현되는 그림들은 대부분 나의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구성된 화면과 공간이고, 그것을 나의 손 끝의 붓과 물감을 통해 직관적으로 캔버스에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에 이 뻣뻣하고 빈틈없이 채워진 선과 면들이 내가 공간을 구성하는 것에 있어 어떠한 강박을 만들고 그대로 고정되어, 유연한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빈틈없는 화면을 깨고, 내가 채우는 화면 곳곳에 나의 의도가 포함되지 않은, 우연성과 유동성이 강조된 완전히 곡선적인 어느 것을 함께 배치하여 더욱 풍부하고 깊이 있는 화면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가지 시도 끝에 물감 마블링을 캔버스 표면에 입히기 시작했다.
이후에 도시 곳곳을 관찰하고 나의 눈으로 보는 대로 화면을 편집하여 그림으로 그려내는 과정에서 조금 더 조형 요소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것들을 캔버스 화면 밖으로 끌어내거나, 물감이 아닌 다른 매체로 드러나게 하여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법을 다양하게 바꾸어 보기도 했다. 일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도시이면서, 이곳에는 수많은 눈이 존재하고 그 시각을 자극하는 현란하고 다채로운 요소들이 아주 많다. 나는 우리가 그것들을 매 순간마다 상황마다, 때와 장소에 따라 항상 다르게 본다고 믿는다. 그 찰나의 느낌을 내가 보는 장면의 실재와는 전혀 다른 색감과 기하학적 형상으로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물감 또는 그 외의 매체들을 통해 표현할 때에는 또 그때와는 다른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처럼 일상의 장면들 자체가 나에게는 흥미로운 시각 이미지, 그리고 시각 예술의 일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