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준(Studio-AA) 개인전
3-A Gallery, CICA Museum
July 6-10, 2022
2022.07.06-10
Color Research
저희 Studio-AA는 Archiving for Arts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에 있습니다.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의 형태를 아카이브 작업을 해오던 중 아카이브라는 형태와 확장성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카이브라는 것은 저희가 느낄 때 편집자 혹은 구성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작년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건들에 대한 아카이브(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제까지 역사의 큰 흐름에서 아카이브라는 카테고리에 들지 못했던 사건, 사고, 사람들에 대한 아카이브를 전시의 형식으로 꾸려가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 이번 전시 Color Research는 수 백년간 이어진 인종주의/인종차별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들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과거로부터 여러가지 다른 형태로 존재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주제를 (그 동안 인간적인 노력들이 실패했다는 가정하에)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요즘의 데이터 분석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어떠한 답을 도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작은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전시를 통해 저희가 도출한 연구과정과 단편적인 결과들을 나열하는데 있으며 그 과정중에 편집된 역사적 사실들과 제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Studio-AA <Color Research: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한>(CICA 뮤지엄, 2022.07.06~10)
피부색이 만들어낸 차별, 그 화합의 희망에 대한 역설
류동현 미술비평
존 레논은 1971년 발표한 노래 <이매진>에서 ‘천국과 지옥이 없고, 국경과 종교가 없으며, 소유와 탐욕, 배고픔이 없는’ 세계를 상상했다. 그러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아마 존 레논이 살아있었다면, 그리고 <이매진> 노래를 2022년 발표한다면 이 부분을 추가하지 않았을까. ‘피부색이 없는’ 세계를 말이다.
지난 2년 간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세계의 여러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긍정적인 풍경은 아니다. 전세계 인류 앞을 가로막은 치명적인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해 더 결집하고 연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계는 국경을 닫고, 서로간의 교류를 막아버렸다. 폐쇄성에서 발전한 서로간의 반목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등장하고, 전세계의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종 문제, 즉 피부색과 관련해 오랫동안 곪아터진 상처의 틈은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미국의 경우 흑인에 대한 차별에 더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등장한 것이다. 아시아가 코로나19의 발생지라는 주장으로 촉발된 비이성적인 혐오다.
CICA 뮤지엄에서 7월 6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컬러 리서치: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한> 전시는 이러한 인종차별, 피부색에 대한 혐오 문제를 ‘색에 대한 연구’라는 가치중립적인 시각관련 프로젝트로 제시한다. 가치중립적 ‘연구’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전시 자체는 이러한 인종차별에 대해 조곤조곤하고 ‘블랙유머’스러운 비판을 가한다. 이렇듯 피부색에 대한 연구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환기하는 작가는 시각예술그룹 Studio-AA다.
Studio-AA라는 시각예술그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감독 윤성준과 프로듀서 이성환이 주축이 된 Studio-AA는 ‘Archiving for Arts’, 즉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의 형태에 대해 아카이브 작업을 하고자 결성되었다. 그러나 두 명 모두 이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삐딱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예술 아카이브뿐만 아니라 자신들만의 시각을 드러내는 작업을 직접 시도하기에 이른다. 지난 해 탈영역우정국에서 진행한 전시는 첫 결실이었다. <Group Ego, 진실과 탐구> 전시는 몇 명의 작가와 함께 음모론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을
통한 일종의 모큐멘터리(페이크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진행했다. 작가는 이러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의 진실과 그 방향성의 의미를 묻고자 했다. 이렇듯 Studio-AA는 영상 아카이빙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식의 예술 문법을 실험하고 있다.
이번에 열리는 Studio-AA의 두 번째 전시 <컬러 리서치: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한>는 좀더 직접적인 문제 의식을 드러낸다. 작가는 지난 해 벌어졌던 아틀랜타 한인 마사지숍 총격 사건을 접하고 인종 문제에 주목했다. 이와 함께 2020년 벌어졌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 좀더 거슬러 올라가 1992년 한국인들과 흑인들의 대립을 촉발한 LA폭동의 단초가 되었던 로드니 킹 사건 또한 작가의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이러한 인종차별의 역사를 리서치하면서 이 지구의 인류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피부색의 평균 색깔값으로 모두 바뀐다면 이러한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의 작품을 살펴보는 것은 작가의 작업 과정, 혹은 연구 과정을 살펴보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먼저 <연구과정>은 흑, 백, 황, 갈색의 피부색으로 이루어진 인종별 비교를 구글 검색엔진을 통해 빅데이터 크롤링을 통해 시행했다. 수집한 이미지들을 통해 평균 색깔 값을 내면 이 세계의 인종차별에 대한 해결의 단초, 혹은 화합의 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순수한’ 의도에서다. 놀랍게도 객관적 공간이라고 여겼던 인터넷 공간은 작가의 기대와는 달리 오류와 편견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키워드에 따른 검색은 인종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오히려 강화시킬 뿐이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이 설계해 놓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데이터 분석이라면, 그 결과는 오히려 오프라인보다 더 노골적으로 기능하기 좋다”라는 명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희망보다는 암울한 미래를 확인했다고 할까. 결국 데이터를 걸러내는 작업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 최소 6천 개 이상의 인물 이미지를 모았다. 그리고 이러한 피부 색깔의 값을 대입해 세계 인종의 평균값을 몰핑 과정을 통해 합성해 나갔다. 관객들은 벽에 부착되어 있는 거대한 QR코드를 접하게 된다. 리서치 과정에서 수집한 인물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거대한 QR코드다. 관객들은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피부색의 인종들이 피부색의 평균값으로 변화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수많은 데이터양으로 제작되었지만, 순식간에 변화하는 인물상과 피부색을 보면 우리가 왜 이렇게 오랜 시간 피부색으로 갈등하고 있는지 의문과 함께 허탈감이 든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과정을 보고 있으면 오랜 시간 벌어진 갈등의 양상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일 게다.
<별난 것들의 역사 1>은 피부색에 대해 색다른 의문을 던진다. 과연 인종차별을 가한 가해자는 피부병을 앓아서 명확한 피부색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범죄를 저질렀을까? 작가는 과거 미국에서 벌어진 몇 가지 인종차별 사건을 작업으로 제시한다.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의 가해 경찰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의 가해 경찰관, 2021년 애틀란타 한인 마사지숍 가해자의 머그샷(체포된 범인을 촬영한 경찰 사진)과 피부병 환자들의 사진을 합성한 작업이다.
<별난 것들의 역사 2>는 다양한 인종주의적 편견들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 영상 작업이다. ‘흑인은 춤을 잘 춘다’, ‘동양인은 수학을 잘한다’ 등 인종에 대한 수많은 편견이 있다. 실제로 작가는 작업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흑인과 동양인에게 이러한 내용의 행동을 요청했지만, 이러한 편견과 다른 결론을 얻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모델로 섭외한 백인에게 백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하나 생각해서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요청했을 때 나온 모습이었다. 그가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 특히 <연구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론은 <점정결론>이라는 작업으로 선보인다. <잠정결론>은 3개의 작업으로 나뉘는데, <데이터분석값>은 빅데이터의 크롤링으로 얻어진 피부색의 데이터값을 지구의 대륙 형태로 배치된 수조에 물감의 풀어 혼합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실제로 여러 인종들간의 피부색 평균값으로 얻어진 색이 대륙별로 구현된다. 물 속에서 물감이 혼합되어 가는 과정은 2대의 CCTV로 촬영된다. <관찰: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의 이 작업은 24시간 염색되는 단편적 현상들만을 비출 뿐, 어떤 객관적인 통찰력과 시선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작가가 생각하는 세계 저널리즘의 현주소다. 마지막 <검사지>는 수조 위에 아마천을 펼쳐서 혼합된 물감에 염색을 시키는 작업이다. 단순히 액체로서 혼합되는 것이 아닌, 물리적인 형태의 천 위에 색이 물듦으로써, 일종의 피부를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전시가 끝난 뒤 이 <검사지>는 <검사결과>로 작동을 하게 된다.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한’이라는 제목을 통해 작가는 이러한 피부색에 의한 차별, 혐오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인종차별이 아닌 인종화합이 미래에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지만, 연구를 진행하면 할수록 그 희망이 쉽지 않음을 작업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고 포기하면 안 되는 법. 작가는 세계의 인종차별 행태를 이러한 연구 작업과 그 결과를 통해 관객들에게 담담히 제시한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디딘 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듯이, Studio-AA는 규모가 작은 연구 결과라도 세상에 제시함으로써 피부색을 넘어선 인간의
화합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971년 존 레논의 <이매진>처럼, 2022년 Studio-AA 또한 작업을 통해 세상에 작은 파문을 던지고자 한다. 그리고 그 파문은 좀더 거대한 파장으로 울려 퍼질 것이라고, ‘그 미래는 꼭 올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 전시가 우리에게 주는 작지만 강한 미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