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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 Lee Solo Exhibition

    이솔 개인전
    CICA Museum, M Gallery
    January 10 – 14, 2024
    2024.01.10 – 14

    CRIME / ROMANCE

    이솔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하트 심벌과 나비,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화려한 생명체.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 음산함이 스친다. 하트 심벌과 나비는 거대한 크기와 거친 질감, 깨진 형상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솔은 미(美)와 통속성 사이에서 줄을 타던 하트 심벌과 나비에 공포와 숭고를 부여한다. 화려한 표면을 자랑하는 <Monster in fairytale> 역시 실상 죽은 생명체의 가죽이다. 이솔은 아름다움과 추함, 매혹과 공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뒤섞어 동화 속 생명체를 축조했다.

    모더니즘 예술은 미래를 상상했다. 마리네티는 미래주의 강령이 실현된 파시즘 사회를 꿈꿨고 기 드보르는 소비자본주의로부터의 탈주를 상상했으며 에이젠슈타인은 혁명을 시각적 비전으로 구현했다. 하지만 동시대 사회는 상상의 동력을 잃었다.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세월호, 코로나 바이러스, 이태원 참사 앞에서 우리는 다른 체제를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이솔은 상상력 대신 파상력(破像力)을 사용한다.

    사회학자 김홍중에 의하면 파상력은 ‘꿈과 꿈 사이에 펼쳐진 이 가위눌림과 환멸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는 힘, 그리고 희망의 근거를 그 파편들 속에서 찾아내려는 자세’다. 거대한 꿈은 무너졌다. 누구도 유토피아를 상상하지 않는다. 파상력은 꿈의 붕괴를 직시한다. 새로운 가능성은 기만적이고 매끈한 꿈보다 무너진 꿈의 파편에서 탄생한다. 이솔은 거대한 꿈을 꾸지 않는다. 하트 심벌, 나비와 괴물은 사회적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대안적 체계를 대표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무너진 꿈과 아름다움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특히 이솔은 동시대 한국의 청년 문화를 통해 꿈의 파편과 아이러니를 포착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통속적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예컨대 K-POP은 연일 아름답고 화려한 소년, 소녀를 보여주고 많은 청년들은 그들을 선망한다. 동시에 K-POP은 청소년 노동, 종사자들의 정신건강, 승자독식 구조, 루키즘, 성적 대상화의 그늘을 품고 있다. 꿈과 환멸이 점멸한다. 한국 사회의 아름답고 통속적인 표상은 언제나 멜랑콜리와 비극, 꿈의 파편을 수반한다. 하트 심볼이 거대한 파편으로 다가오고, 나비의 날개가 공포를 수반하고, 아름다운 형상 속 괴물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이솔은 아름다움을 고발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외피에 현혹되지 말고 괴물의 실체를 파악하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그것은 파상이 아닌 또 다른 상상에 불과하다. 이솔은 단지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 희망과 비극이 동시에 공존함을 지켜본다. 나이트라이프의 쾌락과 낮의 환멸, BTS의 연설과 아이돌의 죽음, 할로윈 축제와 이태원 참사, 로맨스(romance)와 범죄(crime). 근대적 제도 밖의 순수성을 약속하는 로맨스와 근대적 제도 바깥으로 탈주하는 범죄 사이의 친연성처럼 미(美)와 추(醜), 삶과 죽음, 상상과 파상은 가까이에 있다. 이솔은 거짓된 아름다움과 희망을 제시하는 대신 진실된 파편을 제안한다.

    글: 이재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