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디어 예술을 위한 4일
정소영
올해 3회를 맞이한 CICA뉴 미디어 국제 컨퍼런스가(CICA New Media Art Confefence 2019,이하 CICA NAMC 2019) 6월 1일부터 4일까지 김포에 위치한 CICA 미술관에서 열렸다. 김종호작가의 작업실을 기반으로 김포에 설립된 CICA 미술관은 사진, 회화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와 관련된 국제 서적들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에 2017년부터는 매년 전세계의 뉴미디어 아티스트와 관련 전문가, 미술 애호가들을 초청해 서로의 기술을 공유하고 향후 발전된 방향을 모색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게 되었다. 올해 3회 째를 맞이한 CICA NAMC 2019에는 특별히 서울대학교 심철웅교수와 박제성교수의 협조로 서울대학교 영상매체예술 연합전공 학생들과 만남을 통해 한국의 뉴미디어 아트를 세계 전문가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CICA NAMC 2019 참석 작가로는 중국 출신작가 루이 샤(Rui Sha), 스페인 출신 라벤 베가 발바(Rabén Vega Balbá), 미국 출신 작가 케론 크롤락(Karen Krolak), 에릭 지에글러(Eric Zeigler), 타일러 칼킨(Tyler Calkin), 홀든 홀컴(Holden Holcombe),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엘리슨 베이커(Allison Baker)와 아론 메케인(Aaron McKain) 부부가 함께했다. 한국에서는 윤장우, 김장언, 정수진, 정아사란이 참석하여 자신들의 작업을 발표하고 이에 대해 함께 토론하였다.
‘포스트 휴먼(Post-Human)을 주제로 컨퍼런스의 첫 발표자는 루이 샤였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대중과 소통하는 루이 샤의 작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18년에 선보인 퍼포먼스 작업 <Threshold> 였다. 불이 꺼진 공간에 두개의 컴퓨터가 연결된 스크린이 놓여 있다. 한쪽에는 작가가, 다른 한쪽에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작가의 동창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관람하는 대중이 앉아 있다. 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기에 타인과 지인의 경계에 있는 동창을 통해서만 반대편의 작가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이 퍼포먼스는 작가 스스로가 갖는 사생활에 대한 경계와 동시에 개인적인 경험이 대중과 공유되어야만 하는 작가로서의 숙명을 보여준다. 루이 샤가 전하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경계는 과연 작가라는 직업이 주는 문제로 한정할 수 있을까. 개인의 경험과 일상을 타인과 공유하는 SNS 공간도 사생활 침해라는 경계는 분명 존재한다. 이는 법적인 기준이 아닌 당사자의 의도와 의도치 않은 공개사이에 존재하는 개인적 감성의 경계이다. 한국에서도 카카오톡 프로필과 상태메세지의 활용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공유로만 간직하고 싶은 사진도 프로필에 사용되는 순간 당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공유된다. 또한 직접적으로 상대에게 할 수 없는 말이나 현재의 감정상태를 상태메세지로 전하는 형태 역시도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던 새로운 형태들이다. 이처럼 현 사회에 드러난 에전의 인간 삶에서는 고려되지 않던 감성 경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거부감을 루이 샤는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한국 작가임에도 프랑스를 기점으로 활동해 국내에는 익숙하지 않은 정수진은 2019 피렌체 국제 비엔날레 선정작가이자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외국에서 이미 바이오아트(Bio Art)와 리빙아트를 결합한 작품으로 여러 전시에 참여하였다. 정수진의 최근 작업은 실제 처방받은 약물을 활용해 신체 작용에 대한 효과와 감정을 표현한 회화이다. 시각디자인을 배운 적 있는 작가의 작품은 다른 설명 없이 작품 만보면 단순한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깝다. 하지만 작업할 때의 감정과 신체의 상태에 따라 선택된 약물로 그려진 작품은 시간, 날씨, 체온, 향 등에 반응하여 변화하도록 만들어졌다. 때문에 작품 완성 이후에도 전시를 통해 만나는 관람객들의 특징과 전시 환경에 따라 작품은 지속해서 다른 색과 형태로 스스로 변화한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사람의 약물 섭취 후 신체적 반응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이차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의 색을 통해 감정 안에도 여러 가지 색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이와같은 정수진의 작업방식과 작품은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의 ‘형광토끼’로 불리는 ‘GFP Bunny’(1) 와 같은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주는 새로운 시도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정유진의 작품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넘어서 작품 스스로 변화하는 형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참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렘브란트 미술관 그리고 네덜란드 과학자가 공동으로 연구해 개발한 AI 프로젝트인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가 예술계에서 화제가 되었었다. 17세기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ain) 작품을 분석해 얻은 데이터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렘브란트 특유의 특징을 모방한 그림 출력물은 렘브란트만의 구도, 색채, 유화의 질감까지도 구현했다. 예술계에서는 이 그림이 과연 렘브란트의 그림인지를 논하였지만 여전히 예술의 본질에 대한 미학적 논의만이 분분할 뿐이다. 여기서 정수진의 작품과 연관해 주목할 점은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하는 딥러닝의 요점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다. 물론 정수진 작품의 화학적 반응으로 인한 변화는 딥러닝과 다르게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 스스로가 변화하는 형태는 예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뉴 미디어’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미디어’를 ‘매개’ ‘중간’이라는 라틴어 ‘메디우스(medius)’ 즉, 매개하는 모든 수단이라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뉴 미디어 아트’는 예술과 새롭게 탄생하는 미디어가 존재하는 한 지속해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발전된 뉴미디어를 통한 새로운 현상 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예술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은 뉴미디어 아트에서 더욱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CICA NAMC 2019는 세계의 뉴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현시점에서의 예술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되었다.
(1) 2000년, 에두아르도 칵은 선천성색소결핍 토끼의 수정란에 형광 단백질(Green Fluorescent Protein)을 주입해 형광빛을 띄는 토끼를 탄생시켜 바이오아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