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지 개인전
CICA Museum, M Gallery
August 2 – 6, 2023
2023.08.02 – 06
몸은 이성이 모르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놓쳐버리면 없는 것이 되어버릴 그런 미세한 밀도(형체 없거나, 의미지어지지 않는 지점)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것을 포착하여 감각을 자극하는 나의 언어로 번역한다. 학습된 인식이 어떤 현상 앞에서 경험하는 나의 순간과 서로 충돌할 때, 나는 기존의 틀을 흔드는 경험 앞에서 판단이 멈추면서 불확실한 느낌에 휩싸일 때가 있다. 작업은 이러한 충돌의 지점, 그 혼란으로 인해 시작된다. 작업으로 드러난 나의 조형 언어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부조리한 몸과 불안심리, 그럼에도 그 무언가를 기대하는 나의 저항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쩌면 세상에는 감춰진 것, 불분명한 것, 아직 설명되지 않은 것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는 분석과 이해에 의해서라기보다 오히려 힘에 의해 작동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금방이라도 사라져 버릴 몸의 반응은 정체가 빈약하고 불명확하지만, 인식의 틀을 흔들면서 갑자기 말려오는 이러한 말할 수 없는 반응들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지점일지 모른다.
이번 전시의 작업 소재로 나는 글자, 점자, 사회적 약속 기호 등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언어가 가진 약속된 의미들을 지워내고 감각을 자극하는 무언가로 자리 이동시킴으로서 틀이 가진 경계를 지워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지점, 틀에서 소외된 지점들을 드러내고자 함인데, 나는 그 공백에 들어찰 새로운 가능성들을 기대한다.
작업 중, 감각을 자극시킬 수 있는 제작 방법의 하나로 나는 바느질행위를 가지고 왔다. 찔러 상처를 내면서 기워가는 바느질의 양가적 작동 방식이 굉장히 모순된 행위로 이루어졌다 생각되었다. 이는 의미를 지워내면서 또다시 새로운 의미들을 발생시켜내고자 하는 바람, 나의 작업 원리와 닮아 있다 판단되어 작업에 사용하였다.
이은지 작가는 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3번의 개인전과 20여 차례 단체전을 하였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양가적 불안 속에서 생활하며, 일상의 순간들에서 놓치면 없는 것이 되어버릴 그런 조그만 생각과 불확실하고 미세한 느낌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지금은 그것들을 붙잡아 가지고 놀며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