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7 – 11, 2021
2021년 7월 7일 – 7월 11일
M Gallery, CICA Museum
잊을 수 없는 초상화가 있었다. 장시간 접해서 확실하게 기억한다고 생각했던 초상화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틀렸다는 경험을 한 뒤, 내가 보고 기억하게 될 세계의 모습이 소설 같은 것이 아니라 계속 변화되며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할 때 세상의 모습은 소설 속 허구적 사건과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곳과 같았다.
회화 작업을 하는 나에게 캔버스는 이러한 반복적 허구적 표상들이 만들어내는 흔적들이, 시각적인 형태로 자리잡는 공간이다. 이런 흔적들은 ‘선은 공간을 지나가지만 색은 남는다’라는 명제아래 표현된다. 사람들, 풍경들, 냄새나 향을 가지고 불어오는 바람들 등 움직임을 가진 것들은 선으로, 그들이 나에게 남기고 지나가는 잔상이나 감각들은 색으로 은유 되고 번역 된다. 작업에서 선들은 다양한 밀도와 두께를 가진 색을 남긴다.
내가 관찰했던 세상은 평행적으로 끝없이 이동하거나,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저변에서 접점을 가지기도 한다. 그렇게 잊혀지거나 혹은 강하게 인상을 남기며 남아있거나 하는 시각적인 기록들로 차있는 모습 이었다. 그런 기록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색채와 형태로 재생되는 것들을 회화작업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근래에는 보다 장소분석가와 같은 입장으로 집단의 기억 속에 의미 있는 공간을 다각도로 비춰보고 회화적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념비적 장소 혹은 풍경에서 접하는 흥미로운 냄새, 빛 등 감각적 경험들과 기억들을 색과 이미지로 연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공간을 화면에 구축한다. 특히 장소를 분석할 때 하나의 거대한 향수의 구조로 빗대어 보는 ‘smellscape’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 대지의 경제적 기반이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올라오는 냄새나 향을 베이스 노트로, 중간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향, 냄새 등으로 미들 노트로, 그 장소의 첫 느낌을 가장 빨리 증발하는 탑 노트로 은유 한다.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사라지는 향과 같이 증명할 수 없지만 문득 풍기는 기억과 인식의 세계를 회화에 담고 싶다.
나의 작업은 기억 속 공간에 대한 것이다. 특정 공간에서의 감각적 기억으로부터 연상되는 색과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즐기고 이는 작업에 단초가 된다. 쉽게 사라지는 감각들을 회화라는 고정적 틀을 가진 매체 위에 질료화, 형상화 될 때의 표현방식을 연구한다.
회화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은 것은 ‘그 때’, ‘그 공간’ 의 감각이다. 잊혀졌던 감각은 어디까지 기록될 수 있고 어떻게 변형되어 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근래에는 보다 장소분석가와 같은 입장으로 집단의 기억 속에 의미 있는 공간을 다각도로 비춰보고 회화적 언어로 치환한다. 기념비적 장소 혹은 풍경에서 접하는 흥미로운 냄새, 소리, 빛 등 감각적 경험을 색과 이미지로 연상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억된 공간을 화면에 구축한다.
작업에서는 장소를 ‘Smellscape’의 관점으로 보고 있다. ‘Smellscape’는 특정장소를 거대한 향의 덩어리로 보는 시각이다. 장소특유의 문화와 경제적 기반으로 인해 대지에서부터 올라오는 향은 지속력이 강하고 오래 남아 잔향을 이루는 베이스노트,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냄새들을 미들 노트로, 그 장소의 대기로부터 맡게 되는 첫 냄새를 가장 빠르게 증발해 버리는 탑 노트로 비유한다. 이러한 시각을 체득하기 위해 여러 코스를 통해 4년간 조향을 배웠고, 장소에 대한 후각적 경험을 색 차트와 드로잉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다. 길에서 스쳤던 그리운 향, 어스름한 불빛으로 아늑했던 나의 방, 우리 집 냄새와는 달랐던 친구의 집 에는 감각적 경험들이 포함되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억들은 눈에서 멀어지면 쉽게 잊혀지고 사라진다. 이렇게 잊혀진 기억들과, 어딘가에 남아 있을 흔적들을 시각화하고 화면 위에 붙잡아 둠으로써 나를 둘러싼 세상의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 등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