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선 개인전
CICA Museum, 3-A Gallery
May 8 – 12, 2024
2024.05.08 – 12
곰팡이는 나무를 소화한다
초록과 파랑과 흑연의 색은 연약한 천 위에서 바람이 되었다 부드럽다가 거세다가 다시 부드러워지던 목탄의 흔적이다 그것을 칠하던 몸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고기를 감싸는데 사용되는 흰 실들이 천과 목탄의 흔적 위로 얼기설기 격자무늬를 만든다
천이 부드러운 몸이라면 흰 실들은 뼈처럼 단단하다 살을 뚫고 길을 만드는 뼈의 소란한 움직임을 따라 몸은 함께 속삭였다 낮과 밤 사이를 흰 갈비뼈들이 잇고 있다 낮에 만들어진 성긴 뼈들은 아래로 떨어져 튼튼한 밤으로 진입한다 낮은 밤으로 회복하며 쌓여간다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갈비뼈 틈새를 통해 방의 구석을 엿보았다 그곳에는 이야기가 희미해진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세 여성이 초록 숲속을 하염없이 걷고 있다 어제 읽은 책에서는 곰팡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곰팡이의 섭식은 너그러워서 다른 이들을 위한 세계를 만든다. 이것은 곰팡이가 세포외 소화를 하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소화를 돕는 산을 체외로 배출해 먹이를 영양분으로 분해한다. 마치 위를 밖으로 뒤집어서 몸 안이 아니라 몸 밖에서 음식을 소화하는 것과 같다. 영양분은 그 후 세포에 흡수되어 곰팡이의 몸뿐 아니라 다른 생물종의 몸도 자라게 한다.*
나는 곰팡이가 핀 고기를 보며 숲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다 세포외 소화를 시작한다 나의 몸에서 나온 실들이 서로에게 요란하게 엮이었다 나는 소란에서 부드러움이 태어나는 순간을 목격한다 벽은 서서히 소외를 잊어가고 장소에서는 생명이 자라기 시작한다 잔디 소리를 듣는다
* 애나 칭의 책『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연구)에서 가져온 문장들이다.
민지선(b.1994)은 드로잉, 마크 메이킹, 실험적인 글쓰기, 영상, 그리고 설치 작업을 통해 번역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시각예술가다. 민지선은 번역을 해결되지 않고 상충하는 감각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서로 교감하는 장소라고 정의하며 번역이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변증법적이고 용기 있는 수단이 라 생각한다. 몸이 가장 지혜롭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공간, 몸, 재료, 자연이 상호교란을 만들어내는 풍경을 탐구한다. 감각은 필연적으로 은유로 번역되기에 작업을 통해 은유의 정치성을 고민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템플대학교에서 회화와 드로잉 석사 학위를, 성균관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심리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에 거주하며 작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