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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CA Art Studio Program: Yoonsun NA Solo Exhibition

    나윤선 개인전
    CICA Museum, Flexspace Section B
    April 18 – 30, 2024
    2024.04.18 – 30

    제로의식상태

    나의 작업은 불확실성을 담보하는 규칙을 통해 안전지대로부터 벗어나고 새로운 화면을 창출하고자하는 바람에서 시작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아무런 제약이 없는 무규칙 속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 학습된 안전지대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습관적이고 예상 가능한 패턴에서 나오는 화면에 지루함과 답답함을 느끼며 의식의 제로(0) 상태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규칙을 독자적으로 설정했다.
    전세계적으로 취향들이 동시에 무한히 공유되는 시대에 살면서 새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패턴으로 재생산되는 유행들을 보게 된다. 나는 이 현상이 미술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양식과 그 안에서 작업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방식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패턴들은 거대한 문화적 습관이 되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주어진 무한한 정보 값을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주체적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작업의 소스들을 가져오고, 창작을 위한 독자적인 규칙을 적용하여 예측가능한 유행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온라인 플랫폼에 있는 검색 엔진을 통해 특정 키워드를 검색하여 이미지를 얻는다.
    2. 이미지들을 숫자화하고, 추첨하여 선택된 번호에 해당하는 이미지만을 사용한다.
    3. 하나의 종이에 한 개의 화살표 모양의 드로잉을 여러 장 그린다.
    4. 추첨함에서 화살표 드로잉 종이를 4 장 뽑고 이를 구도로 삼는다.
    우연과 비결정성이 지속적으로 관여하는 규칙에 의해 그리면서도,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확실성을 끊임없이 수용해야 한다. 이는 학습으로 인한 습관적인 인식의 개입의 여지를 막아주고, 새로운 화면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 된다. 내가 어느 날에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는 지에 따라 작업의 재료가 바뀌고, 어떤 추첨을 하는 지에 따라 작업의 방향이 달라진다. 완성본에 대한 청사진이 없고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규칙들에 의해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예측 불허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과 규칙의 역설이 갖는 불확실성은 학습된 안전지대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장치로 작용하며 생각지 못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지도의 역할을 한다. 습관적인 인식으로 벗어나 의식의 제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규칙을 세팅하지만, 그 규칙은 어디로 갈 지 한계 지을 수 없는 지점으로 흘러간다. 수평적 흐름에서 벗어나 수직적 창조를 위한 아이러니한 시도들로 인해 화면에서 새로운 조형적인 즐거움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비로소 나는 답답함에서 벗어나 자유로움 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