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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이슈: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Artist’s Statement)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쓰는 글로, 유럽이나 미국의 미술 대학교 대부분이 학생들에게 포트폴리오와 함께 입학과 졸업시 제출하도록 하고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의 사용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1990년 초에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짧게는 50~100자 정도, 길게는 500~1000자 정도 내외로 쓰여진다. 1(영국 대학교 대부분에서는 500자 이하의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선호한다.)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검색하다 보면 심심찮게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반대하는 글들을 볼 수가 있다. 아티스트는 미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작품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이미 비주얼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굳이 글로서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이는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찾아볼 기회를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이 알아서 작품을 설명해주는 유명 아티스트가 아닌 이상, 현대 미술 분야의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요구하고 있으며 미술과 관련된 분야 및 언론계에서도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요구할 때가 있다. 현재 미국 대학의 90% 에서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하나의 교육과정으로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의 수요는 왜 증가하는 것일까?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쓰는 목적 중 하나는 본인의 작품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명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글을 씀으로써 작품을 만들기 전에 세웠던 계획, 느낌,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가 등 작품에 담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을 설명할 때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보는 사람에게 작품의 중요한 부분을 알려줄 수도 있다. 비주얼 언어만으로는 보는 사람이 작품 뒤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으며, 작품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가 전혀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대 미술계에서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작품과 더불어 관객과 작가 사이의 의사소통의 창이 되며, 관객에게 본인 작품을 어필하는 좋은 기회로 작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갤러리 디렉터나 큐레이터, 혹은 아트 딜러들 사이에서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비판하는 의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다.) New York City’s O.K Harris gallery의 아트 디렉터 Ivan Karp는 “나는 전시장에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보통 스테이트먼트들은 소수만이 이해 할 수 있게 써있으며 문법적으로 맞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주제와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한 Philadelphia Inquirer의 아트 비평가 Edward Sozanski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100개 중 99개가 터무니 없는 말을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해당 작품으로부터 흥미를 잃게 만들어 버리며, 그것을 볼 때마다 ‘저 사람은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게까지 만든다고 덧붙였다.2

    그렇다면 과연 잘 쓴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글이다. 따라서 읽는 사람이 작품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작가의 관심사와 작가가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작가의 해설지와 같은 것이다.

    다음은 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아트 정보 공유 웹사이트 Artquest에서 공개한 ‘좋은’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쓰는 방법이다.

    첫 번째는 전문적이고 어려운 언어로 글을 쓰기보다 일반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쉽게 쓰는 것이다. 실제로 이 부분은 다른 아트 신문지나 매거진 등에서도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나 전문 용어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면 그 글을 이해한 소수의 몇 사람에게는 훌륭한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 정보 사이트 Artbusiness에서는 미술을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쉬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수의 대중을 이해시키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두 번째는 본인 작품에 대해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본인의 작품을 지나친 수식어로 과장하는 식의 글은 불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나친 과장은 관객들을 속이는 것 뿐 아니라 본인을 속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런 글은 오히려 거부감을 유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본인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에서 “붉은 색의 화려함이 돋보이며 노란색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서…”라고 썼다고 가정해보자.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는 객관적으로 써서 보는 이가 평가하게 만들어야 하는 글이지 본인이 스스로 멋진 수식어구를 사용하며 보는 이에게 생각을 주입하는 글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행위는 보는 이의 의견을 묵살시키는 행동이며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Artquest에서 제시한 ‘좋은’ 스테이트먼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는 없지만 분명 주목해야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에는 무엇을 넣고 무엇을 넣지 말아야 할까?

    먼저 생략해야 할 부분은 작가의 프로필이다. 작가의 프로필이나 전시 리스트는 작가 전기(Biography)나 이력서(CV 혹은 Resume)에 넣어야 할 부분이다. 또한 다른 큐레이터나 아트 딜러들이 평가한 코멘트도 생략하여 보는 이가 직접 평가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이렇게 봐야하며 이렇게 느껴야 한다” 등의 작품에 관한 주입식 어구 또한 생략해야 한다.

    포함해야 할 부분은 어떠한 미디어를 사용했으며, 왜 사용했는가 등의 작품에 반영한 아이디어나 주제에 대한 부분이다. 본인의 작품과 연관된 특정 이론이나 아티스트들에 대하여 언급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잘 모르는 참고자료를 포함하는 것은 불필요할 수 있다. 만일 그 자료가 꼭 필요한 부분 중 하나라면 짧고 간략히 설명하도록 한다. 또한 작품과 관련된 아티스트를 쓰고 싶다면 쓰되 본인과 비교하며 쓰지 않도록 한다. Artbusiness에 나와 있는 예를 인용하면 “피카소처럼 내가 이렇게 했다.”보다 “내가 노란색을 사용하는데 있어 피카소의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았다.”라는 식으로 쓰도록 한다.3

    모든 아티스트들이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고 잘쓴다고 해서 그 작품이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한 중요의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거부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는 이상, 완벽히 거부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의 기본 기능에 충실한다면 관객과 아티스트가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를 주제로 한 전시회들이다.
    The Art of the Artist’s Statement at the Hellenic Museum (2005)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 전시라고 하지만 전혀 텍스트는 찾아 볼 수 없는, 아티스트 스테이트먼트가 반드시 글로 이루워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한 전시회. 드로잉, 비디오영상, 퍼포먼스 등이 글을 대신 한다. 참여작가 : Kika Charalambidou, Juan William Chávez, Thulani Earnshaw, Effie Hallivopoulou, Richard Koenig, Brandon LaBelle, Jenny Marketou, Serkan Özkaya, Sabrina Raaf, Scott Reeder, Ryan Swanson, Anna Lagiou-Tsouloufi, Pamela Z, Eleni Zouni.

    Proximities : Artists’ Statements and Their Works at the Kamloops Art Gallery (2003)
    다양한 미디어로 이루어져 이미지와 텍스트의 경계를 허문 전시회. 참여작가 : Stephan Kurr, Donald Lawrence, Paula Levine, Kristi Malakoff, Ashok Mathur, Jan Peacock, Brenda Pelkey, Brigitte Radecki, Sandra Semchuk

    오수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1 http://en.wikipedia.org/wiki/Artist’s_statement
    2 http://www.huffingtonpost.com/daniel-grant/are-artists-statements-re_b_701604.html
    3 http://www.artbusiness.com/artstat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