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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TRAVEL: 조지아 사바나 (Savannah, GA)

    December, 2013
    출발했다. 얼마간의 여행이 얼마간의 운전이 며칠의 숙박이 될지 모른 채 그렇게 출발하는 기분은 무척 자유롭다. 하얀 백지에 무슨 그림을 그릴 지 모른 채 펜을 든 설레는 마음이랄까.

    미국에서 특히 남부를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말 그대로 풍경 속을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가도가도 그 끝이 없다. 산은 푸르고 나무는 끝이 안 보이도록 이어졌다. 남쪽으로 향할 수록 겨울이지만 푸른 숲들이 울창하다. 나무들과 또 그 사이사이 넓은 대지는 남쪽을 가득 메우고 사람들을 북쪽으로 밀어낸 것 같다. 달려도 달려도 끝이 없는 숲길, 그렇지만 지치지 않는다. 그것이 푸름의 힘인지 나무의 힘인지 자연의 힘인지 여행의 힘인지 알 수 없다.

    점심을 먹고 출발한 길속의, 아니 숲속의 운전은 밤 10시가 되어도 우리를 도시로 안내하지 못 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첫 숙소를 찾았다. 누군가는 한밤에 유일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길가의 광고판 속에서 숙소의 이름과 가격을 살피고 누군가는 차안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고 있는 스마트폰 속의 앱을 이용해 근처 숙소의 내부까지 살핀다. 각자 자신의 방식에 대한 확신에 차 있다. 결국에는 직접 숙소를 눈으로 확인하고 안심을 하든 실망을 하든 결론을 짓는다.

    이튿날은 전날 쉬지 않고 달려온 덕에 아침을 먹고 바로 사바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용한 남부 영화의 세트장. 누구나 낯선 미국의 도시에 가면 어렷을 적 영화 속 장면을 한 번쯤 떠올려 보았을 것이다. 이곳도 내겐 낯설었다. 남부 도시는 처음이니까 간접적으로 경험한 영화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제 이시간 이후로 이 지역 도시들은 이곳의 이미지로 각인될 것이다. 영화가 떠오르는 것 보다는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도시가 크지 않아 이곳저곳을 직접 거닌다. 옛스런 풍경에 걸맞은 공원과 마차 그리고 가게들. 흔히 미국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으리으리하게 사람을 압도하는 스카이라인도 없다. 고즈넉하다. 왠지 이게 다일까라는 의심마저 든다. 더 샅샅히 뒤진다. 그나마 더 번화한 도시는 강 언덕 상단에 평평하게 위치하고 있었고 그런데 나는 그 곳마저 고즈넉하게 걷고 있었다. 그 강과 수위를 비슷하게 위치하여 언덕 아래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분위기의 길, 강을 따라 그곳에선 한 길로 늘어놓여진 상점들과 식당들 그리고 호텔들이 사람마저 강물처럼 길게 늘어 놓았다. 강을 따라 내려가기도 또는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강물 속 물고기처럼 강변의 길을 오고가고 있다.
    내용과 형식, 여행에서 어떤 것을 추구하는가. 이국인으로서 내용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 보다 현혹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사진을 찍어 남긴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여행의 목적이자 여행의 내용이 되고 만다. 나도 강가의 그 길을 걸으며 그곳의 색다른 풍경과 인상적인 건물들을 꼼꼼히 살핀다. 그리고 사진에 담는다. 오랜 세월 그리고 강가라는 자신의 위치를 건물들은 그 외벽에서 맘껏 드러내고 있었다. 이끼가 낀 듯한 건물들 너무 오래되서 불에 그을린 듯한 건물 외벽들. 깔끔한 것보다는 서로가 오래되었음을 뽐내듯 낡은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올드타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식적인 빈티지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훨씬 편안하다. 정말 낡은 건물들이어서일까.
    그렇게 모두가 한결같이 오래된 건물들 중에 나의 발길을 멈춘 곳은 어느 사진 가게. 재미있는 사진들이 많다. 그리고 이 도시의 엽서도 구경한다. 어느 도시에 가든 내가 하는 일은 그 도시의 엽서를 구경하는 일이다. 엽서는 그 도시의 가장 대표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그 중에 가고 싶은 곳이 생길 때가 많다. 넘쳐나는 인터넷의 수많은 사진들을 보다 보면 정말 그 도시의 상징인 랜드마크를 쉽사리 찾지 못하고 금새 지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 가면 마음 편히 살필 수 있는 비교적 합리적인 개수의 엽서가 나를 그 곳으로 안내해 주기 때문이다.

    어느 고풍스런 여관 건물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실내의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미국의 여느 식당이었고 음식 또한 그랬다. 사바나의 대표적 공공기관 중 하나인 SCAD 디자인 대학(Savannah College of Art and Design)에 들렀다. 옛 건물과 현대식 건물을 교묘하게 연결하여 확장한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교육은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곳은 조지아에 있던 친구들이 다녀간 곳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출발 전에 그들의 경험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곳 거리를 거닐다가 문득 문득 그들이 걸어갔을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누구와 어떤 경험을 이곳에서 쌓았고 그리고 어떤 인상을 갖고 이곳을 떠났을까. 나의 기억을 정리하며 이 도시를 뒤로 했다.

    글.사진: 유경진
    문화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학구파 컴퓨터 공학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네이버에서 근무하다가 현재는 메릴랜드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이다.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를 좋아하며 요리와 스포츠, 빈티지 아이템 수집 및 문화 탐방이 취미.
    주) 사바나(Savannah)는 미국 동남부 조지아 주에 있는 도시이다. 역사적인 도시로, 조지아 주가 영국 식민지이던 시절부터 발전하였다. 조지아 주 최초의 도시이며, 연방이 성립된 후 최초의 조지아 주 주도였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영국으로 가는 선박이 자주 취항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남북전쟁 중의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남북전쟁 이후 다소 쇠퇴하였으나, 20세기 이후 목화의 수출항으로 다시 번창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