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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사람들: 갤러리 도스 대표 김미향 – 예술이라는 낭만적 노동

    C.A.N. PEOPLE (사람들) 은 아티스트, 디자이너, 및 예술 문화 전반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May 8, 2014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전시기획에 관한 글은 많이 다루어봤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공적으로 내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이유는 말을 아껴 실수를 줄이기 위해 늘어나는 나의 조심성 때문일 것이다. 고심 끝에 자본주의 시장에서 예술의 변화하는 위치 그리고 노동이라는 생산 활동으로 예술이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단편적인 이유라면 갤러리 도스의 이번 하반기 공모주제가 ‘게으른 노동’이기도 했고주) 좀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예술인에 대한 기본적인 복지가 요구되는 현 세태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이 가진 신비주의는 이미 벗겨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작가에게 직업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예술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기보다는 “백수에요.”라고 겸연쩍어 하는 것은 익숙한 광경이다. 주변에서 예술가라고 하면 특별히 우러러보기보다는 밥은 굶지 않는지 걱정하는 눈빛이 더 앞선다. 자본주의 시대에 예술은 이제 금전적인 가치로 환원되기를 기대 받지만 이에 부흥하지 못하니 이제 예술가라는 직업은 한낱 쓸모없는 짓거리를 하는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을 받는다. 반면, 그 전에는 홀대받던 연예인이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제치고 직업선호도 1위인 점은 대조적인 풍경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는 변하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물질적인 가치에 치중되고 있는 사회적 풍토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 밑바탕에는 예술교육의 부실이 깔려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문화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 밑거름이 되는 수많은 예술관련 전공자들이 매년 배출됨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주는 배고픈 현실에 이내 포기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최근에 들어 정책적으로 예술인에 대한 복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초기단계라 미흡한 듯 보인다. 창작지원금으로 100만원씩 예술인 900명에게 3개월간 지급되지만 작품을 위한 노동, 시간 등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누구에게 보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또한 애매한 점이 많다.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정책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예술로서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예술가라는 직업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정말 운이 좋은 극소수의 젊은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들어가게 된다. 돈만 많다고 작가가 될 수 없다. 또한 재능만 있다고 작가가 될 수도 없다. 한 사람이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주변 환경 그리고 변수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참 외로운 싸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적으로 작가들이 직업으로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이고 안정적인 지원이 받쳐준다면 긴 여정을 버텨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논의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 예술인 복지법처럼 자본주의의 노동에 단순히 빗대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돈만 쥐어준다는 것은 예술인의 처절한 현실을 더욱 후비는 꼴이다.

    예술에도 엄연히 노동의 영역이 존재한다. 작가끼리는 ‘노가다’(’막일’의 잘못된 일본식 표현)라며 지적인 활동과는 반대되는, 결과물을 위한 무의미한 과정들을 지칭해 장난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기존의 단어 안에는 낭만이 없기에 새로운 단어가 필요해 보인다. 분명 예술품은 생계를 위한 필요만을 위해 제작되는 제품은 아니다. 예술에는 개인의 삶과 철학이 담겨있으며 다양한 의사표현방법 중 하나이기에 특수한 생산 활동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갤러리 도스의 공모기획주제를 ‘게으른 노동’이라는 모순된 단어로 표현한 것도 ‘게으른’이라는 형용사를 통해 노동의 행위에 낭만이 개입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 위함이었다. 사실, 예술을 노동에 빗대어 이야기하기에 개념적으로 딱히 들어맞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예술로서 자신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마치 내일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열정으로 전시를 만들어 낸 후 곧이어 밀려드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작가는 끝없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당장 걱정해야 하는 생계비와 전시를 위해 공들인 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결과를 맞닥뜨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가들은 오늘을 급급히 헤쳐 나가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의 길에는 어떠한 정답도 없이 본인 스스로 질문하고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더 고되다. 그와 동시에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다면 예술가만큼 행복한 직업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의 인정도 받고 그것이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정말 더없는 행복이다.

    예술가에게 자본주의의 잣대를 자연스럽게 들이대듯이 갤러리도 하나의 사업체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안정적인 수익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단순히 예술이 좋아서 참신한 작가에게 좋은 전시기회를 주고 싶다는 막연한 이상만으로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예술가와 갤러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업 관계로서 발전한다. 작가 없이는 갤러리도 없으며 반대로 작가는 공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위해서 갤러리가 제공하는 전시공간이 필요하다. 사실 작가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갤러리도 현실적인 상황은 여유롭지 않다. 경영난에 허덕이는 경우도 많으며 매년 많은 갤러리가 폐관과 개관을 거듭한다. 나는 종종 갤러리를 백조에 비유하는데 물 밖에서는 우아해 보이는 백조처럼 물 속에서는 가라않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발버둥 치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갤러리 도스도 전시장 운영으로는 부족한 금전적인 부분을 조형연구소나 디자인 사업으로 보충하고 있으며 이처럼 다양한 수익 구조를 만드는 것은 다른 갤러리들도 마찬가지이다. 흔히들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각자의 입장에서 줄 수 있는 것과 줄 수 없는 것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와 갤러리는 같이 성장해나가야 할 공동운명체이며 서로가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약력

    김미향은 전시를 만드는 문화기획자이자 공공미술을 위한 컨설턴트이며, 예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에서 조소를 전공 후 현재 갤러리 도스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ART IN CITY 조형연구소 자문의원을 맡고 있다. 공감, 중독, 고리 등과 같은 주제어를 가지고 매년 두 번에 걸쳐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으며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또한 주기적으로 협력 작가를 선정하고 국내외 아트 페어 참가를 도모하여 예술의 다양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주) 2014년 하반기 갤러리 도스(Gallery DOS) 기획공모 ‘게으른 노동’展
    http://blog.naver.com/gallerydos/140206275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