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 2014
오늘은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박경근씨를 모시고 감독님의 작품관과 최근 상영작인 ‘철의 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C: 안녕하세요? 박경근씨 반갑습니다.
K: 반갑습니다.
C: 박경근씨는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학교에서 영화와 영상을 공부하셨는데요.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신 배경이 무엇인가요?
K: 캘리포니아의 Art scene (예술계)을 보면 분위기가 일단 백인중심이에요. 당시 아트 분야는 snobbish (주: 속물적인, 고상한 체하는)하고 좀 아닌 것 같다 해서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 후 뉴욕에 가서 모션 그래픽과 뮤직비디오 분야에서 일하면서 재미있긴 했는데 뭔가 허무했죠. 상업적이다 보니 뭔가 내가 생각하던 디자인이 아닌 것 같아서요. 당시 디자인 일을 하면서 클럽에서 VJ도 하고 그랬었어요. 당시 클라이언트가 뭐라고 하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를 하기로 결심하고 CalArts(California Institute of Art)에서 영화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죠. 당시 아방가르드한 분야의 영화에 관심을 가졌죠. 하지만 영화를 하다가도 답답한게 뭐냐면 영화제나 영화 쪽 사람들은 영화밖에 모르거든요, 그런 게 저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첫 작품을 만들고 나서 큐레이터가 제 작품을 보고 이걸 갤러리 스페이스에 틀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공간에 맞게 이 영상을 설치하면 어떨까 해서 하게 됐죠.
C: 그러면 감독님 작품의 경우 영화제와 전시장 중에 어느 쪽에서 주로 많이 발표되나요?
K: 양으로 따지면 영화제가 많죠. 전시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은데 저는 인스톨레이션 (installation, 설치미술) 이나 아트 환경이 저한테는 더 맞는 것 같아요.
C: 그렇다면 철의 꿈의 경우 인스톨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만드신 것인가요?
K: 사실 이 작품은 인스톨레이션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죠. 미술전시에서는 프로젝터로 세 개의 영상을 나란히 병치시키도록 설치하였고요.
C: 정작 ‘청계천 메들리’와 ‘철의 꿈’을 보면 주제가 상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철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K: 처음에 한국에 와서 아무도 몰랐거든요. 근데 그때 Flying City 라는 작가 그룹이 있었어요. 그 분들이 하는 청계천 아카이브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게 됐어요. 당시 청계천 일대를 촬영하면서 쇠가 가지는 느낌과 그곳의 아저씨들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촬영하면서 내가 그곳 아저씨들과는 정서가 너무 다르니까 친해지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못하는 술도 마시고 하면서 친해지려고 노력했죠.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많이 우울했었거든요. 한국에 적응도 잘 안되고 부모님도 빨리 취직하라고 하시고, 어마어마하게 우울했죠. 당시 작품을 하면서 그곳 아저씨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이 우리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아버지가 육사출신의 강인한 이미지셨거든요. 아버지는 절대 소통할 수 없는 보수적이고 철과 같은 존재였죠. 철을 보고 느낀 느낌이 그런 느낌이었던 거예요. 그 시대를 살면 그렇게 강인하게 살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배경이 있지 않았나… historical fact (역사적인 사실)을 바라보기 보다는 뭔가 감정적으로 공감해보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철이 가지는 느낌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는데 석기시대부터의 도구들 있잖아요. 그중 가장 볼품 없는 게 철기 도구들이에요. 다 녹슬어있고 부져있고… 금,은,동 같은 경우는 반짝반짝한데 철만은 maintenance (유지보수)를 안하면 금방 녹스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들도 센 척은 하는데 사실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내가 바라본 철이 그런 것 같아요.
‘철의 꿈’ 스틸이미지
C: 최근 상영작 ‘철의 꿈’을 매우 인상 깊게 보았는데요. 고대의 고래신에 대한 이야기와 헤엄치는 고래의 영상,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의 역사에 대한 영상, 그리고 배를 만드는 과정의 영상이 병치되면서, 거리 있어 보이는 두 주제의 묘한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두 소재를 사용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K: 고래와 배의 이미지가 그냥 같은 것으로 보였어요. 모양도 그렇고 크기도 그렇고. 촬영다니다 보니까 이야기들도 비슷하더라고요. 선사시대 고래 사냥을 통해 고기나 뼈로 온 마을을 먹여 살리고 주변 부족과 상거래를 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 6-70년대에 현대중공업이 한 역할과 비슷한 것이어요. 그걸 미리 생각한 것은 아니고 처음에는 모양이 같아서 똑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직감적인 느낌으로 시작했죠.
C: 영화를 통해 배를 만드는 세세한 공정을 보면서, 현대중공업과 포스코에 어떻게 계약을 맺고 영상을 찍을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회사에 촬영허가 동의는 어떻게 얻을 수 있었나요?
K: 처음에는 공문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거절당했죠. 그러다가 우연히 정몽준 의원을 인터뷰하는 촬영 아르바이트를 맡게 되었는데 다행히 좋게 봐주셔서 촬영을 허가받을 수 있었죠.
C: 영화의 후반부에서 선박을 주조하는 장면이나 선박의 일부가 매달려 옮겨지는 장면과 함께 한국의 굿소리 같은 음악이 병치되었는데요. 정확히 어떤 음악인가요?
K: 평상시에 관심이 있어서 동서양의 종교음악을 수집하곤 했었는데, 영화에서 종교적인 숭고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종교음악을 사용했어요. 말씀하신 음악은 티베트 chanting (찬팅, 낭송)인데, 쇳소리와 같은 악기와 저음의 목소리가 영상과 맞는다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된 거고요. 다른 장면에서 나오는 서양작곡가 말러의 음악도 Funeral March (장송행진곡)거든요. 장례식이나 죽음에 관련된 음악이죠.
‘철의 꿈’ 스틸이미지
C: 박경근 감독님은 외국에서 생활 경험이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철의 꿈’에서 한국 문화와 현대사를 어떠한 관점으로 접근하셨는지 궁금합니다.
K: 처음으로 작가적 의식이 생긴 게 한국에 귀국하고 나서인 것 같아요. 한국에서 reverse culture shock (문화적 충격) 을 거치면서 제 감정에 대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아마 한국에서 자랐다면 이런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겠죠. 한국이 아직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저한테는 작품의 소재가 아주 많아요. 이 작품을 베를린과 MoMA에서 상영했는데 저를 “한국” 영화, “한국” 아티스트로 다루는 것이 서양인 입장에서는 당연한거지만 살짝 기분이 나빴어요.
C: 한국의 대표적인 시각인 것처럼 소개했다는 말씀이군요.
K: 그렇죠. 제가 물론 한국 사람이지만 여기서 자란 것은 아니고, 다른 문화권에서 자라서 시각이 많이 다르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C: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 중에서도 한국의 독특한 점들을 많이 발견하실 것 같아요.
K: 네. 그렇지만 서양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은 아닌 거잖아요. 서양인이 같은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면 또 저처럼 만들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뭔가 저는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아요.
C: 그렇군요. 그래서 박경근씨 작품에서 한국의 문화적 특징이 더 잘 드러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K: 아마 문화를 잘 모름으로 인해서 당연한 것에 “이거 왜 그래?“ 하면서 의문을 더 제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된 것 같아요.
C: 아까 한국에 귀국하면서 culture shock이 크다고 하셨는데 어떤 면이 가장 힘드셨나요?
K: 처음 들어와서 군대를 바로 갔는데 군대가 가장 큰 충격이었죠. 지금 준비 중인 작품도 군대에 관한 것이고요. 그리고 연애에 관한 것도 많이 힘들었죠.
C: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있어서 문화차가 있으니까 그렇겠군요.
K: 그렇죠.
C: 영화를 보시고 한국 관객이나 서양 관객의 시선 차이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점이 달랐는지 설명해주세요.
K: 한국과 서양 관객의 차이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영화 관객과 미술 관객의 차이는 좀 있는 것 같아요. 영화의 경우는 테크닉이나 정치적인 이슈 등으로 질문이 약간 제한적인 경향이 있는데 MoMA에서 전시할 때는 미술쪽 분야 사람들이다보니 반응이 좀 더 다양하게 나왔어요.
‘철의 꿈’ 스틸이미지
C: 감독님 작품이 영화 카테고리 안에서는 다큐멘터리 장르라고 해야 하나요?
K: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도 있긴 하지만 좀 걸쳐있죠.
C: 그렇다면 영화나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활동할 때 한국과 미국의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나요?
K: 이번에 미국에 가서 전시를 하면서 미국도 미디어 아트 분야는 아직 정리가 된 것은 아닌 거 같다고 느꼈어요. up in the air (아직 불확실한, 미정인)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리고 미술과 영화 두 분야의 관객이 겹치진 않는 것 같아요. 아주 대가이지 않는 이상 말이죠… Matthew Barney가 5시간짜리 영화를 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하면 미술 쪽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지 영화 쪽 사람들이 보러 오지는 않겠죠… 영화인들은 중간에 보다가 나가지 않을까요?
C: 그렇군요. 그렇다면 박경근씨는 보통 작품을 하실 때 전시 버전과 영화 버전을 따로 만드시는 것인가요?
K: 그렇죠.
C: 아까 군대에 관한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하셨는데 요즘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K: 지금 아이디어만 있는 단계인데 군대에 다니면서 연극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acting (연기) 하는 거잖아요. 역할을 하는데 동작이 중요한 거죠. 군대에 가면 이틀간 경례 연습만 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하는 거죠. 구체적 스토리는 아직 정리는 안 돼 있어요.
C: 재미있는 소재인 것 같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Art와 Artist란 무엇인가요?
K: Art를 한다는 것은 제가 작업할 때 누가 간섭을 하지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죠.
C: Artist의 생각이 100% 반영될 수 있는 것?
K: 생각이라기보다는 내 ‘새끼’ 이런 것이 아닐까요.
C: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약력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성장한 후 UCLA에서 영상과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이후 뉴욕에서 일하다가 CalArts 에서 Film으로 MFA를 취득하였다. 군대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 한 후 2010년 그의 첫 작품 ‘청계천 메들리’는 부산국제영화제,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다. 2014년 발표한 ‘철의 꿈’은 인스톨레이션과 영화버전으로 제작되었으며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뉴욕 MoMA에 초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