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진 개인전
CICA Museum, M Gallery
July 19 – 23, 2023
2023.07.19 – 23
평평한 지구 (地球) / The flat earth
저의 작업은 ‘네오 키네틱’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발언하고 생각하는’ 작업입니다.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려 시도하는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마치 시인이 시어를 조어하듯이 또는 ‘일본의 하이쿠’처럼 기계장치로 짧고 강렬한 움직임 그리고 반복하는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답답한 세상에 대한 불편한 속내는 그렇게 돌파구를 마련하였습니다.
‘평면의 시간’에 대한 연작은 ‘시간의 변주’를 점점으로 원점으로 환원되어 다시 ‘점’, ‘선’, ‘면’에 집중합니다. 단순하고 도식화되어 디지털화하기 쉬워, 가벼움과 견고함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조각의 제작 특히 2차원과 3차원의 사이에 있는 듯한 ‘2.5차원‘의 작업입니다.
저는 조각을 공학적으로 접근하기를 선호합니다. 미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계측기기와 광학도구들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카메라 셔터 릴리스 소리에서 어떤 충만함 같은 것을 느낍니다. 이번 작업을 저는 ‘사물’로서 산업 생산물이나 계측 도구처럼 각각의 공리적 기능과 설계의 다이어그램을 이용하여 재료의 질감, 무게, 색상과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힘, 기이한 감성 대비와 균형에 관한 것을 제어하며 존재감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디지털 도면의 평면성으로 실체와 공허함의 문제에 집중하게 하여 보여지는 것 보다 좀 더 먼 곳을 보거나 상상하는 작업으로 궁극에는 발끝에 아무 저항도 없는 우주 공간을 상정한 것입니다.
지난 오랜 키네틱 작업은 나레이션으로 ,말하지 않은 많은 것, 멈춤, 간격, 암시, 부재를 표현한 운동의 기점과 착점 속으로 조각을 몰아넣어 현실의 공명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유적이며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지는 취약성을 암시합니다.
My past work is often categorized as ‘Neo Kinetic.’ It’s more about ‘declaring and thinking’ rather than simply ‘expressing. Much like a Japanese Haiku, which pushes the boundaries of modernism through the medium of literature and arts, I have created a sculpture that showcases short, intense movements using mechanical devices. A breakthrough has been provided to release discomfort from the frustrating world.
At its peak, the ‘Planar Time’ series in ‘Time Variation’ comes full circle, returning to its starting point and concentrating on ‘Point’, ‘Line’, and ‘Plane’. Due to its simple and urbanized design, which is easy to digitize, the work transcends between lightness and sturdiness, rendering it a ‘2.5-dimensional’ sculpture. The work from this exhibition are ‘prototypes’. It is a process to induce time inconsistency through a process of cutting, folding, reassembling planar panel, hiding their sections, and making them planar again.
I prefer to approach sculpture as engineering, inspired by measuring and optical instruments, which is somewhat distant from art. I also feel fulfilled by the sound of camera shutter release. I express the presence of sculpture by controlling the texture, weight, color, and light reflection of the material, as well as the emotional contrast and balance. This is achieved through the use of engineered functions, plans, and diagrams commonly found in commercial products or measuring instruments.
These works employ the flatness of digital plans to draw the viewer’s attention to the issue of reality versus emptiness. This way, viewers are encouraged to see or imagine a ‘place beyond what is shown’, ultimately symbolizing the gravity-free outer space.
Kinetic works from the past created a resonance with reality by driving the sculpture from a starting point to an ending point. This was achieved through movements expressed by narration, many unsaid things, stoppage, frequency, suggestion, and absence. However, this is figurative and suggests our vulnerability as humans.
1992년부터 저의 ‘시적(詩的) 장치’라는 키네틱 작품들은 ‘문학과 예술’을 주제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들은 심리적인 전치 작용으로 ‘모순을 작동시키는‘ 기계작업들입니다. 80, 90년대의 비판 세력이 기성세대가 된 후, ‘편협한 지식인’ 되었고 저는 이것이 실망스러워 조각을 다시 생각합니다. 종교를 갖지 않은 저로써는 우주과학이 세상의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차원을 넘어서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조각 작품은 3차원 공간을 의미하지만, 저는 2차원의 면과 3차원의 입체 사이에서 작업하며. 관람자를 흔들어 ‘시간성’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식의 불완전함과 해석에 대한 불확실성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Since 1992, my kinetic works called ‘Poetic Device’ has been created on the subject of Literature and Art. These are mechanical works that operate contradictions with psychological transposition. Disappointment towards the 80’s and 90’s critically political generations who now became ‘narrow intellectuals’ made me think over about sculpture. As a non-religious person, I think space science is the key to the world. It’s important to look beyond each other’s dimensions.
Sculpture means three-dimensional space, but I work between two-dimensional planes and three-dimensional cubes which is to express ‘time’ by shaking the viewer. This is also for imperfections in perception and uncertainty about interpret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