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훈 개인전
M Gallery, CICA Museum
September 18-22, 2024
2024.09.18-22
UNSEEN ECHOES – 빛의 잔상에 관한 기록
고요한 무대 위에서 무용수가 움직이자 다양한 위치의 조명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빛의 그림자가 무대 바닥 위에 다양한 그림을 연출한다. 무용수의 동작을 따라가는 그림자와 빛의 잔상이 다양한 기하학적인 비주얼을 창조하는데, 가령 무용수의 쭉 뻗어 꺾은 팔은 무대 위에서 타란툴라의 다리가 되었다가 만개하는 꽃으로 변형되며 끊임없는 시각적 유희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재미있는 효과는 굴절 없이 직선으로 강렬하게 내리꽂는 핀 조명의 역할이 무대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용도가 아닌 자신을 더 앞에 내세우기 때문에 가능한데, 무용수는 정제된 빛을 요하는 공연예술에서 빛의 레이어가 만든 기하학적 움직임과 형상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자 무대 위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전락한다.
음악의 활용 역시 편집을 거치지 않은 날 것의 그대로를 노출했다. 작가는 랜덤하게 발췌한 클래식 음악의 클립을 무작위로 틀고 무용수는 몸으로 즉흥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값이 똑같이 세팅된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운드가 교차하는 지점이 생기면서 공간 차에 따른 사운드 싱크로율에 균열이 생기게 되는데 작가는 사운드 레이어를 통해 조각난 시간의 파편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에디팅을 거치지 않고 결과물에 그대로 드러낸다.
이 주객전도의 현장은 우리가 기대하는 공연 예술의 개념에서 상당히 빗겨 나간다. 바로 이 점이 오정훈 작가가 의도하고 파고든 지점이다. 거대한 공연 시스템과 무대 메커니즘 안에 자신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시간과 공간의 틈을 보고 더 깊이 파고들어 무대 예술의 이질적인 이면을 관객과 공유하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대 예술의 클리셰를 파괴한다.
작가는 무용수의 의상, 동선, 조명 등은 철저하게 계획되고 컨트롤된 상황에서 무용수의 지문을 읽는 연극배우처럼 마치 독백하듯이 음악을 몸으로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영리하게 무대를 세팅했다. 무대를 세팅하고 촬영하는 일련의 과정은 작가가 해 오던 사진 작업 프로세스와 유사성을 지닌다. 그동안 작가는 무용수의 이미지를 시간의 중첩을 통해 사진 한 장에 압축해 평면화하는 작업을 해 왔는데, 기존의 사진 작업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한 이번 프로젝트 모두 시간성과 즉흥성에 기반하여 예상치 못한 비주얼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카메라의 기본 원리인 옵스큐라와 공연장의 무대를 정의하는 스포트라이트에 공통점을 느끼는 작가에게 사진 스튜디오와 공연 무대는 닮은 공간이다. 공연 무대에서 어두운 곳에 빛만 남게 하고자 한 시각적 의도는 곧 카메라 옵스큐라를 연상시킨다.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빛’의 내러티브가 스튜디오에서 무대로, 다음엔 어디로 향할지 기대한다.
글 . 전시기획자 호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