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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사람들: 여행하는 아티스트 리타 크로커 [KOR]

    English Version

    미국에서 자라면서 나의 행동을 인종, 성별, 신념에 따라 수정해가면서 미국의 사회 규범에 순응해왔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피부색이란 혈통보다는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 짓는 잣대가 된다. 게다가 나는 즉각적 관심을 끌기위해 흔히 다소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이며 다채로운 캐릭터로 인식되고 있는 “멕시칸 아메리칸” 여성으로 나를 연출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법을 배워온 것 같다. 사회적 부당함과 성차별주의의 희생양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나의 엘리트적 작가관은 불법이민자, 고군분투하는 학생과 공장 노동자들을 대표하기에는 부적합해 보였다.

    나는 미국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내가 스스로 부여한 나의 역할을 상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미국을 떠났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은 다른 나라, 특히 아시아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이전까지 쌓아올렸던 정체성은 한국에서는 모두 허물어지고 말았다. 히스패닉, 남미, 멕시칸 아메리칸으로 인식되던 나는 여기서 한순간 환영받지 못하는 또 한명의 백인 외국인에 불과했다. 이러한 지각 속에서 일년 반 가량을 서울에서 살아가면서, 나는 히스패닉으로서의 역할을 되짚어가려는 나의 바람을 점점 놓는 법을 배워갔다. 대신, 한때 수치스럽게 생각했었던 나의 학력, 나의 자산이 된 모국어인 영어, 나를 신중하게 만든 나의 나약함, 한때 내가 내 작품에서 진부화시켰던 나의 외모와 같은 부분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나의 페인팅, 드로잉, 사진 작품에서 나는 삶에서 매료되었던 가족사진, 종교적 아이콘, 식민시대의 우상, 문화적 패턴들, 흑백사진과 같은 이미지들을 사용해왔다. 한국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지워지거나 파편화되었다. 이러한 시각적 언어를 편집하는 작업과정은 내가 나 자신과 사회적 책임, 문화적 훈련에 대한 나만의 개념을 편집해나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한국에서 했던 작업들

    2009년 9월-2013년

    한국에서 만든 작품들에서는 한국육군사관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던 미국국외거주자인 멕시칸 어메리칸으로서 나의 위치가 모티브가 되었으며, 여성과 미의 기준이 다소 엄격한 한국의 해방 이후의 환경들은 나의 문화적 정체성을 자극했다. 나의 작품에서는 일상적 이미지들, 아시아 미인에 대한 광고들, 라틴 아메리카에서 찍은 사진들을 다루어왔다. 이러한 과정들은 내가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의 특성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통해 나 자신에게 주어지고 만들어낸 이전의 정체성을 보내버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드리는 과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뒤돌아보면 이런 시도들은 내가 남미 스타일에 대한 고정관념에 순응하고 미술계에서 립서비스를 해주던 것에서 벗어나 내가 물려받은 것과 나 자신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Side Dishes" by Rita Crocker
    “Side Dishes” by Rita Crocker

    “반찬들”과 “동화하기”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의 화려한 상차림에 압도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동시에 살을 빼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웃어른들이 많은 양의 음식을 먹기를 권유하시는 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S-line 몸매, 날씬한 허벅지, 깨끗한 피부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엄격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언제 먹어야하는지, 어떻게 음식을 먹고 대접해야 하는지, 누구와 마시며, 누구에게 잔을 따라야하는지 등의 문제들이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나는 밥 한공기의 칼로리를 계산하는 법과 꿈틀대는 산 낙지를 먹는 방법, 마늘, 고추, 깻잎과 오징어를 한입에 쌈 싸먹는 법을 배웠다. 또한 소주는 자작하면 안 된다는 것, 막걸리가 소화에 도움을 준다는 점, 또한 냄새나는 국들의 맛이 주는 즐거움을 배웠다. 이와 함께 빈속에는 더운물을 먹어야하고, 저녁 7시 이후에는 단식해야하고, 또한 하이힐을 신고 강남의 언덕을 올라가는 법도 배웠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음식의 상차림과, 역사, 맛을 즐기면서도 무절제한 음식의 소비를 꾸짖는 한국의 음식문화와 소통하기위한 일상적 방법들이 되었다.

    "Model Head, Western Body" by Rita Crocker
    “Model Head, Western Body” by Rita Crocker

    “모델 얼굴과 서구적인 몸매”

    이 작품에서 나는 Gerhard Richter의 유럽 사실주의 그림에 대한 형식적 개념을 연구했다. 동양의 관점에서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한국여자모델의 머리에 나의 이미지를 투영하였다. 반면 그녀의 몸매는 얼굴과는 현저하게 다른 체형과 기법으로 그려졌다. 이를 통해 나는 같은 형식의 틀 안에서 이러한 이분 화된 면들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Captain Moon" by Rita Crocker
    “Captain Moon” by Rita Crocker

    “문대령”

    내가 일하는 곳에서 지성과 사회적 지위와 함께 미모, 여성성까지 겸비함과 동시에 전통적 가족관 까지 가지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는 군대에서 일하고 공부하는 이 여성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모순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보수적인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다. 2013년 5월, 믿을 수 없게도 이곳에서 일하던 한 여성이 자살을 했다. 아름답고, 학교에서는 긍정적인 힘이 되었으며, 아이의 어머니이기까지 했던 그녀가 자살을 했던 이유는 엄마이자 아내로서 육군사관학교에서 그녀가 느꼈을 소외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Gangnam (Dior ad)" by Rita Crocker
    “Gangnam (Dior ad)” by Rita Crocker
    “Girl's Bathroom, Apujung, Seoul” by Rita Crocker
    “Girl’s Bathroom, Apujung, Seoul” by Rita Crocker

    “강남 (Dior 광고)” 그리고 “압구정에 있는 여자화장실”

    압구정에서 내가 남미에서 구했던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한국에 1년 반 정도 있으면서, 나는 전에는 일상의 공간으로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색다른 공간이 되어버린 장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특히 럭셔리함을 고취하는 이미지들과 가공의 미인에 대한 이미지들에 주목했다. 부의 상징인 럭셔리한 이미지들은 사회적 신분을 상징했었지만, 사실상 짝퉁 루이비통 백처럼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들이다. 가공의 미인들은 안티 에이징 시술과 같은 – 여성들의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육체적 손상의 상징물들이다. 이러한 작업들 한국미디어의 미학이 아시아에 사는 서양인에게 까지도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를 처음으로 객관적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다.

    작가 약력

     

    http://ritacrocker.com

    리타는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MICA)에서 BFA를 받고 Universidad Nacional de Cuyo에서 미술을 공부하였으며,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MFA를 취득하였다. 뉴욕, 달라스, 필라델피아, 발티모어에서 전시를 가졌으며, 국제적으로는 한국, 영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에서 활동하였다. 필라델피아의 University of Pennsylvania, 콜롬비아 메데인의 University of Antioquia에서 강사를 하였고 한국, 콜롬비아의 Institución Universitaria Salazar y Herrera, 메사추세츠의 Clark University에서 객원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또한 미국, 프랑스, 콜럼비아에서 아티스트 레지던스로 있었으며 현재 텍사스 델러스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