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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이슈: 디지털 아트와 저작권

    January 28, 2015

    전시를 준비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그림이나 조각은 비쌀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반면, 디지털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존중의 정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디지털 파일은 만져지는 것도 아니고 쉽게 복사, 수정 및 배포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관객이나 컬렉터의 입장에서는 가치를 인정하기 힘들 수 있다. 심지어 굴지의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계약 없이 무작정 “원본 파일을 보내봐라”고 요청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이러한 디지털 아트의 편재성(ubiquitous) 때문에 디지털 작품의 경우 음원이나 e-북과 같이 지적 재산(intellectual property)으로서의 저작권 개념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작품의 원본을 요청할 경우 대부분 ‘악의’는 없었고 관심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는 서로의 홍보와 업무상의 편의를 위해서 개인단위의 아티스트를 상대로는 여러 가지 절차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문서화 작업에 대한 무지 혹은 무관심의 결과기도 하다. 결국, 소위 ‘이름 있는’ 작가나 ‘외국’ 작가가 아닌 이상, 한국에서는 중개 및 홍보와 배포를 담당하는 단체가 편의를 위해 개인의 지적 재산에 대한 보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파일 하나 넘기는 것 가지고 뭐 이렇게 생색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잘 키운 콘텐츠를 가로채는 것, 상사가 부하직원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것, 프로그램이나 디지털 파일에 대한 불법 다운로드의 만연화 등 상대방의 지적 결과물에 대한 존중이 없는 태도는 결국 나 자신의 지적 혹은 창의적 노동의 대가도 존중 받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고, 이는 국가적으로도 지식/문화 콘텐츠 개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인데 ‘공유’하면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지적 결과물은 물건과 마찬가지로 엄연히 그 사람의 시간과, 재능, 노력이 들어간 산물이다.

    한편, 지적 콘텐츠의 공유를 위한 사회적 운동으로 MIT를 기점으로 ‘오픈소스 무브먼트 (open-source movement)’가 있었다. 이는 기업에서 소스코드나 정보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하여 대중에게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것에 반하여, 소스코드 및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100% 공개함으로써 누구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이로 인한 산물을 모두가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생겨난 운동이다. 이는 단순히 ‘사회주의’적 분배의 관점에서 생긴 운동이라기보다는 결국 공유를 통해서 프로젝트의 자발적 개발이 가능하므로 최근 노동비 절감 및 홍보의 차원에서 기업에서 오픈소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도 ‘도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보통 해당 소스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개발자의 아이디나 홈페이지 링크를 하단에 명시하는 방식과 같이 서로의 크레딧을 보호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또한 각 개발자는 자신이 개발한 영역을 제한 없이 공개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아이디나 이름을 명시하길 요청하는 등 배포와 동시에 스스로의 크레딧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디지털 작품이 활성화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존중 의식 및 보호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본다. 무작정 배포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 필자도 저작권 보호를 명목으로 일개 아티스트까지 소송을 불사하는 디즈니와 같은 사례는 저작권 본연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라 본다. 미국 저작권법에는 저작권이 있는 지적 콘텐츠의 사용에 대하여 패러디나 교육을 위한 배포를 예외사항으로 두고 있는데, 즉, 패러디의 경우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며, 교육의 경우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배포하는 것은 교육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허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패러디의 경우, 개인 아티스트가 영화나 굴지의 기업 및 브랜드에 대한 주제로 비판을 하거나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의 보호는 개인 단위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개인 단위의 지적 콘텐츠를 회사나 단체가 요청할 경우에는 어떠한 절차가 필요할까? 간단하다. 저작권에 대한 동의 혹은 안내를 포함한 계약서이다. 한국은 “계약서 함부로 쓰지 말라”는 통설이 있다. 하지만 개인 디지털 아티스트에게 계약서는 본인의 노력의 결실에 대한 중요한 보호 장치이다. 계약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에도, 최소한 저작권에 대한 안내를 문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해당 아티스트는 누구에게 어떤 작품 파일을 제공하였으며, 그에 대한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다, 해당 작품은 누가 어떤 용도 이외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 해당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무단 배포 및 사용할 수 없다, 등의 저작권에 관한 사항을 명시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돈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지적 결과물에 대한 존중이며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김리진
    CICA 미술관 아트디렉터